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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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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흔글 이름으로 검색
댓글 1건 조회 2,198회 작성일 12-01-0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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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없었다


연말에 모처럼 집중적으로 본 한국 드라마 <뿌리깊은나무>에서 새삼스럽게 다가왔던 것은 두 가지 사실이었다. 하나는 신분이 가장 높은 임금과 신분이 가장 낮은 백정이 같은 말을 쓴다는 것, 다시 말해서 말이 통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말이 통하는 것도 모자라서 임금이 그런 백정까지도 글을 읽어서 똑똑해질 수 있도록 밤잠을 아껴가면서 글자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왕조는 몇 번 달라졌을지언정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줄곧 한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왕과 백성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유럽에서는 왕과 백성이 같은 말을 쓰는 것은 상식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1006년 잉글랜드로 쳐들어온 노르망디 공 기욤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윌리엄 왕으로 군림했고 그 후예들은 수백년 동안 프랑스어만 쓰면서 잉글랜드인을 다스렸다. 스페인 제국의 황금기를 연 카를로스 1세는 동시에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 황제 노릇도 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카를로스는 왕이 된 뒤로 스페인에서 줄곧 살았지만 스페인어에 서툴렀다. 


대부분의 유럽인은 왕가의 혈통이 어떻게 이어지느냐에 따라서 어떨 때는 프랑스어를 쓰는 왕 밑에서, 어떨 때는 스페인어를 쓰는 왕 밑에서, 어떨 때는 독일어를 쓰는 왕 밑에서 살아야 했다. 유럽의 국가는 군주국이었다. 나라의 주인은 왕이었다. 왕위 계승권이 누구에게 가느냐에 따라서 백성의 운명도 달라졌다. 


프랑스혁명은 나라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고 먹여살리는 사람에게 있음을 유럽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이제 백성은 '신민'이 아니라 '국민'이었고 나라의 주권은 왕이 아니라 국민에게서 나왔다. 이런 나라가 바로 nation state 곧 '국민국가'다. 


프랑스혁명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전쟁은 주로 용병을 사서 했다. 용병들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주는 왕을 위해서 싸웠다. 돈이 많아서 유능한 용병을 쓸 수 있는 왕이 전쟁에서 이길 확률이 높았다. 용병은 돈을 안 주면 움직이지 않았다. 용병에게 애향심은 있을지언정 애국심은 없었다. 돈 없는 왕은 전쟁에서 질 확률이 높았고 돈 많은 왕은 전쟁에서 이길 확률이 높았다. 


프랑스혁명으로 생겨난 국민국가는 이런 통념을 바꾸어놓았다. 신민에서 국민으로 거듭 태어난 프랑스인은 자신들을 다시 신민으로 끌어내리려는 유럽 군주들의 침공에 맞서 무보수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국민은 나라를 지키는 국민군으로 거듭 태어났다. 


공화정이나 입헌군주제를 세워서 절대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국민국가의 기틀을 세운 유럽국가들은 이제 nationalism을 앞세워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영어 nationalism을 흔히 '민족주의'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불합리하다. 


첫째, 민족이라는 한국어는 혈연성이 많이 배어든 말이다. 그러나 nation이라는 영어에는 생물학적 연관성보다는 정치적 통합성이 깊이 배어들어 있다.

둘째, 적어도 유럽이라는 맥락에서 nationalism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제국주의의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민족주의'로 옮기면 nationalism의 nation에 묻었던 역사의 얼룩이 제국주의를 추구하기는커녕 제국주의에 농락당한 '민족'이라는 애꿎은 말로 튀어버린다. '민족'은 부끄러운 말이 되어버린다. 


유럽 진보를 하늘처럼 섬기는 한국 진보는 자신들의 nationalism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유럽 진보들의 자성을 하늘처럼 섬기면서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옮기고는 애꿎은 민족을 규탄하고 질타한다. 


영어 nationalism이 민족주의와 아귀가 잘 안 맞는다는 것은 미국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 19세기 말에 에드워드 벨라미라는 미국 소설가는 백년 뒤, 그러니까 서기 2000년을 무대로 한 미래소설을 썼다. 주인공은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서기 2000년에 잠에서 깨어난다. 주인공 눈앞에 나타난 미국은 백년 전과는 딴판이었다. 


노동 시간은 줄어들었고 공공 식당에서 무료로 양질의 음식을 누구나 먹을 수 있었으며 힘든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은 보수를 더 받았다. 이미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19세기 말 미국에서 작가는 자신이 꿈꾸던 유토피아를 작품에 담았다. 하지만 작가가 그 유토피아에 붙인 이름은 socialism 곧 사회주의가 아니라 nationalism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이루어진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살았던 작가 에드워드 벨라미가 '민족국가'를 유토피아로 그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벨라미는 아마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적을 가진 미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귀하게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고 싶었고 그런 나라를 만드는 꿈을 nationalism이라는 말에다 담았으리라. 벨라미가 생각한 nation은 민족이 아니라 국민이었을 것이다.

유럽의 nationalism도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민주의라고 풀이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한국에 낯선 nationalism은 한국어에 낯선 국민주의로 옮기는 쪽이 낫다.


nationalism의 -ism(주의)는 어딘지 공격성과 호전성을 함의한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그런 공격성과 호전성을 타국에 보인 적이 없으므로 민족<주의>라는 말도 사실은 오해를 부르기 쉽다.

그래도 굳이 민족주의라는 말을 써야겠다는 사람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민족주의에 가까운 영어 풀이는 nationalism이 아니라 anti-imperialism이다. 한국의 역사에는 nationalism도 없었지만 민족주의도 없었다.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저항이 있었을 뿐이다. 



[출처] 박봉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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