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의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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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만 천국에 들여보낸다니 신에게 잘 보여야겠다. 그런데 죽은 뒤에 만날 신이 내가 믿는 그 신이 아니면 어쩌지?"
독일의 저널리스트 위르겐 슈미더(34)는 이런 생각에 "되도록 많은 종교를 믿으며 장점을 취하는 '범신앙론자(Alltheist)'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구원 확률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종교에서 제시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50% 이상 스스로를 일치시키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각종 경전과 종교서적 150권, 종교영화 DVD 100편을 사는 것으로 시작으로, 필리핀의 귀신 쫓는 의식과 중국 도교의 명상 등 4년동안 30여가지 종교를 경험했고 석 달 만에 7번 개종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기사 출처;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05/2013040500022.html)
이 기사를 보면서 나는 '파스칼의 내기'가 떠올랐다.
아무리 신의 존재 확률이 낮다고 해도, 잘못 추정했을 때 받는 대가가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신을 믿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신이 없다면 신을 믿었든 안 믿었든 상관 없이 아무 변화도 없을 테지만, 신이 있다면 안 믿은 사람은 엄청난 벌을 받을 것이고, 믿은 사람은 무한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를 비판한다. 믿음은 결심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데 신을 믿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단지 믿는 척하겠다는 것이지, 진실한 믿음은 아닌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이런 거짓 믿음을 모를 리 없다. 버트런드 러셀은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신이 왜 자신을 믿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신이시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은 절대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신이 있다면 비겁하게 양다리를 걸친 파스칼보다는 정직하게 회의주의를 택한 러셀을 더 사랑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또 죽어서 신이 있긴 하지만 그 신이 다른 여러 신을 양다리로 걸치기로 믿은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질투의 신이라면 여러 신에 보험을 든 것이 오히려 큰 낭패가 될 것이다.
슈미더는 "모든 종교는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며, 죽음이 끝이 아니길 바라고, 죽음 이후에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며, "중요한 건 어느 신을 믿느냐가 아니라 삶과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당신의 구원 확률이 높아졌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하. 우리 모두 죽은 뒤엔 알 수 있겠지!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고, 죽음 뒤에도 행복하게 친구들과 재회하고 싶다. 바라건대, 여러분 모두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의 대답에 나는 로리 리프먼 브라운의 글을 옮겨 보기로 한다. 다음은 [무신예찬](현암사 발행, 원제 50 Voices of Disbelief: Why We are Atheists)에 실린 그의 글 "누가 불행한가?"에서 발췌한 것이다.
사후의 영생을 믿는 수많은 신자들은 내가 죽으면 자기들이 옳다는 걸 알게 되리라고 말한다. 반면 그들이 죽고 나면 그들은 내가 옳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그들이 죽은 뒤에는 아무 의식도 남아 있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무얼 배우거나 경험할 수가 없으니까). 이는 사실 매우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현생에서 여러 즐거운 경험을 포기하고, 신과 그가 부과한 규범을 따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사람들에게,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게 한 고통에 대한 영원한 보상이 없다는 걸 안다는 것은 참혹한 일일 테니 말이다. (중략).
내가 불행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대해 말하자면, 그 근거는 내가 내세를 누리지 못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삶이 끝날 때 더 이상 다른 게 없다는 걸 알면 내가 절망할 게 틀림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태어나기 전의 무한한 시간 동안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 나쁜 적이 없었다. 또 내가 죽은 뒤의 무한한 시간 동안 내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에 통탄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수술을 받는 동안 마취되어 무의식 상태가 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잠잘 때 꿈을 꾸지 않더라도 별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간단히 말해,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는 영원한 하프 소리보다는 깊고 영원한 잠을 택하겠다(하프 연주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 로리 리프먼 브라운(Lori Lipman Brown, 1958~); 변호사 · 교육자로서, 네바다주 상원의원과 '미국 세속 연합' 초대 회장(2005~2009년)을 역임했다.
댓글목록



거대그로밋님의 댓글
크.. 엄청난 논리적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일어날 확률이 있는 것에 대하여 대비하는 것을 '보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명백한 것에 대하여 '보험'을 들지 않습니다.
님은 없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쓴 기사를 들고 오셨습니다.
이는 예시가 적당하지 않은 글입니다. 논리적 모순을 담고 있으니까요.
이 글을 읽고 신을 믿는 것이 보험과 같다고 판단하셨다면, 단순한 말 장난에 놀아 나신 겁니다.
불쌍할 따름입니다.

갈잎노래님의 댓글의 댓글
갈잎노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불쌍하다구요? 제가요? 글을 아주 곡해하고 계신듯 합니다.
제 글 어디에서 '없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파스칼의 내기', 즉 '신에게 보험들기'를 옹호하는 부분이 있던가요?
오히려 '여러 신에게 보험들기'를 한 기사 속의 인물 위르겐 슈미더를 비판하는 글 아닙니까? 유신론자들을 향해 죽어서 아무 것도 의식할 수 없다는 것, 곧 내세가 없다는 것을 로리 리프먼 브라운의 글을 빌어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나는 태어나기 전의 무한한 시간 동안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 나쁜 적이 없었다. 또 내가 죽은 뒤의 무한한 시간 동안 내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에 통탄해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