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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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15년 동안 기독교를 다녔습니다(모태신앙). 교회에서 꽤나 영향력 있는 부모님 때문에, 주위 시선 때문에 다닌 기간이 대략 4년이 되었었지요.... 사실, 저는 기독교를 개독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욕하면 할 수록 그리고,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면 할 수록 그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의 시험"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쓸 글은 기독교인들의 오해를 꼬집고 싶은 마음에 올립니다.
p.s 저는 전투적인 안티가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서서히 바꾸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맹목적이라고는 하나, 그들도 이성을 지닌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비난이 아닌 날카로운 논리와, 비판으로 맞선다면 그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시험이 아닌, 사실을 밝혀주는 햇볕이 될 것이라 생각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2명의 신학도는 저와 함께 신학을 공부함으로써 신학을 신앙이 아닌, 학문으로 받아 들여 철학도의 정신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있고, 편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기복.
사람들은 기도라고 하는 것이 "초월자에게 원하는 것을 비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기복이다. 기복과 기도는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기복이란, 인간의 철학이 발달하지 않은 신화의 시대 때 신께 비는 행위를 나타낸다. 기독교, 불교, 도교 등. 거의 모든 종교의 기도는 사실 상 기복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기도일까? 기도의 진짜 의미를 자신을 객관화 시켜 바라보는 심리적 작용을 의미한다. 즉, 자기수양의 방법인 셈이다. 사실 상 인도의 요가, 명상이 기도에 더 가깝다. 나는 오랫 동안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동양철학에는 기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장 큰 예가 바로 占(점)이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팔자가 있다고 한다. (물론 필자가 점을 믿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동양철학에서 점괘를 해석하고 점괘를 따르는 행위를 할 때라는 예를 드는 것 뿐이다.) 그들은 나온 점괘를 바꾸려하지 않는다. 만일 하늘에서 비가 온다는 점괘가 나왔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초월자에게 비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바로, "비가 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양철학의 점괘가 더욱 기도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이다. 사실, 기독교에서 하는 기도는 기도라기 보다는 기복에 가깝다. "~~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 내용이 대부분이며, 심지어 교회 목사들 까지 그런 기도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철학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철학이 발달할 수록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안에서 찾는다.(물리학적 관찰과는 다른 의미로, 심리적인 고찰을 의미한다.) 기도의 진짜 의미는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그리며 누군가가 나에게 안좋은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그 원인을 환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것을 말한다. 사실 여태까지 이런 말을 하는 목사들을 본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것이 안좋다는 이유로 찾아다니며 욕하고 비난하는 성향은 아니다. 단지 나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안티를 하는 것일 뿐이다. 부디, 기독교인들이 기복에서 벗어나 기도를 하며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기독교 전체가 없어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들이 신화에서 철학으로 나아오기를 바란다. 그 첫 걸음이 바로, 기복과 기도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성과 논리, 철학과 과학이 죄악시 되는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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