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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님들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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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onbosco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12-02-06 21:50 조회 4,323 댓글 10

본문

지난번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많이 참고가 되었습니다.
신화와 역사는 별개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성경이 신의 감동에 의해 쓰여져 오류가 없다는 말은
종교적 테두리안에서만 가능한 말이라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해 보기도 했구요.

그렇다면...
안티님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독교, 천주교등의 야훼 하나님에 대해서만 묻는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신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요?

안티님들은 모두 무신론자 인가요?
아니면 유신론자 인가요?
유신론자라고 한다면 어떤 신을 믿고 있나요?

성당에서는 무신론자라는 말을 유물론자 와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라고 하면 인간이 죽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허무하다고 느끼지는 않는지요?

댓글목록 10

에르하벤님의 댓글

no_profile 에르하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혼의 존재는 믿지만 야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님의 댓글

no_profile 사람답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흠...
개독의 교리로 보면, 물질을 만들어 낸 것이 야훼인데,
야훼가 만든 물질을 부정하라고 하는 것이 개독의 또 다른 주장입니다.
하기사, 야훼가 부정한 동물이 있다고 말했다죠..^^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개독교의 교리, 그들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 일 뿐 입니다.

어쨌거나, 난 무신론자에 종교 무용론자 입니다.
사람이 살다가 죽어서 없어지건,
다른 물질로 분해가 되건
진짜 중요한건 살아있음 아닐까요..???

안티위거님의 댓글

no_profile 안티위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donbosco//전 무신론잡니다.그런데요????

나는안티이다님의 댓글

no_profile 나는안티이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도 무신론자입니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진짜 신이 야훼 하나라면 이 세상에 신화와 종교 속에 존재하는 신들은 뭐가 되죠?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신론을 따르거나 문명문화 속에서 인간의 독특한 상상력 등이 신을 만든 거라고 봐야되잖아요. 그런데 다신론은 역시 아무리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봐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 전설로 세계를 읽는다면 가능하겠습니다만 전혀 다른 지역의 신까지 다 같이 살아있는 다신론의 주장은 너무나도 어거지거든요.ㅇㅇ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죽음 후의 세계를 누구나 한번쯤 꿈꾸게 되거나 영원성을 믿을 수 있지만
없는걸 있다고 우기면 없는게 있는게 되나요? 그야말로 인간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죠.ㅇㅇ
허무함,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직시하고 저 죽음을 생각하며 이 삶을 보다 더 인간적이고 보다 더 보람차게 사는 것.
그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지 않을까요? 적어도 종교를 믿어 허황된 환상을 믿으며 꿈꾸는 것보다는.
더욱 더 실존적이며 더욱 의미있는 일일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 시대에 있어서 죽음이란 결코 허무가 아닙니다. 내가 죽어야지먄 나의 후대기 자라날 그릇이 마련되며
내가 비워져야지만 새로운 문명과 문화가 이 세계에 담겨질 것입니다.
나는 순환되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말해서 나는 고여 썩지 않고 끊임없이 재창조되며 기반이 되며 세계에 환원되는 것입니다.
이 넓은 포용력은 이 지구, 이 세계의, 흐름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좀 어려운 말인가요? 죄송합니다. 열변했습니다.ㅋㅋㅋㅋ

donbosco님의 댓글

donbosco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지난주 까지는 신(야훼)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바뀔수도 있다는 것에 사실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죽음후의 세계를 부정하기에는 걱정이 앞서는것도 있구요 ㅠ.ㅠ

많이 헷갈리는 상태라고나 할까....

회전안마님의 댓글의 댓글

no_profile 회전안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신론과 유물론은 영역이 다릅니다.

신론과 무신론은 관념이 싸지른 애덜이구요,
유물론은 존재가 어떻게 관념을 싸지르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사고방법이에요.

카테고리가 다르지요.

무신론은 신론에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유물론은 무신론과 신론이
어디에 근거하는가에 대한 사고체계입니다.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해보면 신은 존재합니다.
어느 문명권에서도 신을 숭배하고 믿었으니까요.

야훼는 전쟁신이었어요.히브리인들도 처음에는 다양한 다신론의 체계에서
그들의 신앙을 구축했습니다. 바이블에도 나옵니다.
바알신의 신상을 깨라고 하잖아요.바알신은 농경의 신이엇습니다.

왜 야훼는 바알을 깨라고 했을까요? 목축업을 주업으로 삼던 민족들은 가뭄이 들어서 가축이 죽으면
전쟁을 하게 됩니다.약탈경제로 전화되지요.약탈의 도덕성에 가장 부합한 신은?
당연 전쟁신이지요. 그가 야훼엿습니다.농경신을 깨야 전쟁신은 삽니다.

신화체계는 동일성을 담지해요. 힌두교는 인도가 농경생활로 인한 정착이 시작되면서
비시뉴스신이 지배적인 신이 됩니다.그 이전에는 그동네도 전쟁신들의 잡스러운 모임체엿어요.

신화적 체계는 항상 다신론에서 출발합니다.그리고 일신론으로 가지요.

단군신화를 볼까요?

멍청한 개독새끼덜이 항상 신화와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죠.

이들은 신화와 문화적 토대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똥 오줌을 못가리는 거에요.

단군 신화는 토테미즘의 신화입니다.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던 부족과 곰을 토템으로 하던
부족을 단군은 통합하고 싶었나봐요. 그런데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이 뛰쳐나갓덧이
전쟁으로 먹고 사는 호족은 뛰쳐나가고 미련하지만 잡식동물 곰을 숭배하던 토템은
한반도에 남습니다.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뜻이지요.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게 아니라 한반도의 고대국가 체계는 농경문화에서 시작된다.
뭐 그런 뜻인데...

이걸 비판하는 개독새끼덜이 이걸 단군새끼덜은
곰쌔끼냐...이렇게 얘기를 하지요.웃긴건....

이런 새끼덜이 모세가 홍해를 갈랏다는건 인정을 해요.
멍청하지 않아요?

여기까지 보면 신은 각자 인간들이 창조해낸 창조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무슨 신을 믿던 안믿던 신이 존재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

님이 지금 죽음에 대해 계속 해매시는건 님의 죽음에 대한 관념에 메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라고 하면 인간이 죽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허무하다고 느끼지는 않는지요? "


지렁이는 땅속에 살면서 나 언제 죽을건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개념이야 말로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이상한  관념이지요.

에피쿠로스의 편지로 대답해 드리겟습니다.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면 내가 존재하는한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만약 내가 죽었다면 삶을 경험할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인간은 죽음을 경험할수 없다."

그러니까 쫄지 마시고요...


현실에 충실하세요. 죽으면 그만이지 뭐.....

영생을 위해 욕처먹고 현실을 더럽게 사느니
내일 죽어도 깨끔하게 산다.,

어떤거 택할레요? 예수의 상징을 믿는다면.emoticon_132

에르하벤님의 댓글

no_profile 에르하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얼라.....?야훼의 존재가 의심되신다구요?흐음.......emoticon_005

rainysun님의 댓글

rainysun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어떤 조롱(?)에 따르면, '인간에게 신이 필요한 이유는 전지전능한 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지요..

신을 믿는 다는 행위를 냉정하게 돌아보면 저 말이 꽤 의미심장한 말이 될겝니다. ^^

성경은진실님의 댓글

성경은진실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창조신학연구소에 있는 "성경의 무오(無誤, inerrancy)란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글을 복사하여 올려놓습니다.
참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1. 성경의 무오(無誤, inerrancy)와 무류(無謬, infallibility)는 어떻게 다른가
이 두 단어는 성경의 신적 영감과 관련된 단어이다. 성경의 무오란 성경이 모든 역사적, 사실적 문제에 있어 잘못이 없다는 뜻이고, 성경의 무류란 성경이 모든 신앙과 도덕적 문제에 있어 잘못이 없다는 의미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의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은 이와 같은 성경의 신적 영감을 인정하고 있다. 즉 성경이 단순히 인간이 만든 책이 아니요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의 책임을 고백한다. 또한 신학은 본질상 무류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성경의 무오 문제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2. 개혁주의의 성경관
개혁주의도 성경과 하나님 말씀을 동일시 한다. 즉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성경이 말하는 바는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What the Bible says, God says)으로 본다. 찰스 핫지는 계시를 영감보다 더 기초적인 것으로 보고, 계시가 신적 메시지의 내용을 제공하는 반면 영감은 메시지의 내용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핫지는 성경이 하나님의 진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란 증거의 문제를 다루면서  (1) 성경은 내증(internal verification)이 있으며 (2) 외증(external verification)이 있고 (3) 진리에 대한 증거를 '보는 것'과 그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다르며 (4) 이성은 어떤 경우에도 마음을 바꾸어 진리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구 프린스턴 신학의 성경 무오설은  벤자민 워필드(Th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the Bible)를 거쳐 웨스터민스턴신학교의 그레샴 메이천으로 이어졌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의 첫 교수 논문집 제목도 <무오한 말씀>(The Infallible Word, 1946)이었다. 또한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이 성경에 대한 최고의 해석자'(the Bible is its own best interpreter)라는 원칙을 수용하였다. 



3. 성경 무오와 관련하여
성경 무오와 관련하여 말할 때는 믿음과 사실을 구분하여 언급해야 한다.

1) 믿음
(1) 성경 원본의 무오에 대한 믿음
성경 무오란 바로 성경 원본에 대한 무오를 의미한다. 물론 지금 우리 손에 성경 원본은 없다. 그리고 성경 원본 무오라는 의미가 사본들에 무슨 결정적 문제가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모세 시체를 하나님께서 감추신 것처럼 원본을 감추신 섭리를 인정하고 원본의 무오를 인정하는 것이 성경 무오론의 전제이다. 1910년 미 장로교 총회가 진술한 (목사 안수에 필수불가결한) 5개 근본교리들 가운데는 성경 원본의 무오성이 있다. 그 다섯 가지는 (1) 성경 원본의 무오성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 (4)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5)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의 실재성이었다. 이것은 모두 믿음의 영역이다. 1949년 형성된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The Evagelical Theological Society)는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 전체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원본에 있어 무오하다"고 했고 1977년에는 국제 성경 무오 협회(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가 "성경 권위의 불가결한 요소인 성경 무오 진리를 밝히고 입증하고 적용하는 데 단합"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이들 조직은 모두 성경 권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2) 사본들의 유용성에 대한 믿음
성경 무오와 관련하여 원본에 대한 무오성을 믿는 신자들은 사본들까지 모두 전적으로 무오하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사본들 간에는 일부 당연히 상이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본의 무오성을 믿는 동시에 각 사본들 간에 나타나는 상이점들에 대한 세심한 검토를 통해 원본의 참뜻을 성실하게 추적하여 드러낼 필요가 있다.


2) 사실
성경이 무오하다는 믿음에 있어서도 다음의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진리의 기독교가 아니라 국수적 기독교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언어
성경은 말씀 즉 언어로 전해졌다. 바벨탑 사건 이후로 언어가 모든 것을 분명하고 정밀하게 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미숙한 게 아니라 인간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가리웠기 때문이다. 언어는 또한 역사적으로 늘 변신의 길을 걸어왔다. 즉 언어는 시대성을 가진다. 우리 시대의 된장녀라는 단어와 20년 전 된장녀라는 뜻이 전혀 다르게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처럼 언어는 모든 민족, 모든 시대에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논산훈련소>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단순한 논산훈련소라는 실체적 단어임에도 남자와 여자의 느낌이 다르고 한국인과 외국인의 인식이 다르다. 같은 남자라도 논산훈련소 출신과 병역미필자가 느끼는 논산훈련소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다르다. 또한 같은 논산훈련소 출신이드라도 입소한 시기마다 인식이 다르고 장교와 조교와 훈련병 출신이 느끼는 훈련소에 대한 느낌과 인식은 달라진다. 이렇게 언어는 모든 것을 정밀하게 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사람은 같은 단어를 동상이몽식으로 해석하고 느낄 뿐이다. 또한 인간은 언어를 통해 필연적으로 감정적 오류(affetive fallacy)를 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 무오를 믿는 보수신학자 사이에서도 서로 입장이 달라지고 반론을 펴고 때로는 반목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무오하더라도 성경을 수용하는 신자나 독자는 성경에 대한 미숙한 해석으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무오한 성경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성경의 계시와 영감을 이해하고 교회와 역사와 교회전통과 교리와 모든 것을 동원하여 성령께서 인도해 주심을 진지하게 기대하면서 바르게 성경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2) 과학
성경은 과학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무오한 성경은 모든 역사, 시대, 민족, 남녀노소, 지식고하, 빈부귀천을 초월한 책이다. 칼 포퍼는 과학은 반증가능해야 한다고 논증한다. 즉 과학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반박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성경을 과학책처럼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  성경 해석에 과학의 언어를 잘못 적용하면 일반 언어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오해를 불러오게 된다. 만일 성경이 쓰여진 수천 년 전, 21세기를 겨냥하여 컴퓨터와 디지털 사회에 대해 상세히 가르쳤다면 디지털 사회를 맞지 못한 민족과 세대들에게는 수천 년 동안 불필요한 오해를 제공한 책이 되었을 수 있다. 성경 무오론은 과학의 이러한 독특성을 수용한다. 물론 성경이 과학책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성경은 충분히 과학적이기는 하다. 과학을 만드신 분도 성경의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경과 과학의 관계를 잘 이해하여 성경 해석에 있어 불필요한 긴장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3) 사본
완전 무오한 사본은 없으나 사본을 통한 원전을 추적하는 일들은 여러 경우 가능하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성경학자들이 땀흘려 연구하고 수고하여 이룩한 성과이다.

(4) 문자적 축자성의 의미
성경이 무오하드라도 수용하는 사람들의 관습, 언어, 문화, 과학, 역사, 사회 체험 등의 영향 아래 문자적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위에서 설명하였다. 따라서 성경 무오가 문자적 축자(literalness)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의미함을 알아야 한다.

(5) 계시의 점진성에 대한 이해
과학의 언어로 성경이 기록되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계시의 점진성 때문이라고도할 수 있다.  66권 성경은 단숨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계시는 오랜 기간 단계적으로 주어졌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의 저자들보다 더 점진성 가운데서 계시를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즉 신약 저자들은 하나님의 경륜 아래서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계시의 점진성이다.

6) 무오라는 말의 다양성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무오를 믿는 사람들 안에서도 무오라는 말의 개념은 다양하게 쓰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무오란 과학적, 역사적, 문자적 절대 무오(absolute inerrancy)를 말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인격적 교제를 위해 무오하게 주셨다는 목적의 무오성(inerrancy of purpose)을 말하고 어떤 이는 인류 구원과 관련하여 무오함을 믿는 제한적 무오(limited inerrancy)를 말한다. 이들 다양한 무오의 견해들 간의 틈새는 그리 쉽게 메꾸어질 것 같지는 않다.

위와 같은 이유로 사람은 마치 성경을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남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과 말씀 앞에 늘 겸손해야 한다. 토렌스(T. F. Torrance)가 말하듯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체로 완전하더라도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듯 성경을 이해할 수는 없으며 유리를 통하여 보듯 어렴풋이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의 완성은 파루시아와 죽은 자의 부활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때로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kict조덕영

rainysun님의 댓글의 댓글

rainysun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1. 실제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려는 생각은 없고, 무작정 세뇌의 글만을 탐독하는 찌질 어린이에게 질문 좀 하자

"이 두 단어는 성경의 신적 영감과 관련된 단어이다. 성경의 무오란 성경이 모든 역사적, 사실적 문제에 있어 잘못이 없다는 뜻이고,"

아~~주 간단한 질문인데.. 역사 기술에서 내부 모순이 발생하는 문서는 오류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아래 글을 잘 읽고 대답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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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남유다의 아사왕과 북이스라엘의 바아사 간의 전쟁에 관한 비교입니다.


아사는 르호보암, 아비얌에 이어 남유다를 통치했던 왕이며,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로 왕위에 오른 북이스라엘의 왕이지요.

이 둘의 통치기간을 비교하면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 사년을 치리하니라" (열왕기상 15:22)

바아사는 아사왕 3년에 왕위에 올라 아사왕 26년까지 북이스라엘을 통치했던 모양이군요.. (27년이라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조금 더 생각해 보시지요.. ^^)

그런데, 바아사와 아사간의 전쟁에 관한 역대기의 증언을 살펴보면 웃기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사왕 삼십 륙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역대하 16:1)

아사왕 36년에 북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남유다를 공격하였군요..
바아사도 부활했던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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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무류란 성경이 모든 신앙과 도덕적 문제에 있어 잘못이 없다는 의미이다. "

도덕이라는 것은 인식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이 당연하거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늬들 경전은 과거의 낡은 도덕률을 기술하는 부분이 널려있으니.. 도덕적 문제에 뛰어들 자격조차 없어.. 이것도 예전에 써 놓은 글을 가져다 줄테니 잘 읽고 독후감 써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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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을 야훼가 절대선의 존재라 주장합니다.
 
야훼의 악행을 지적할때면, 그들은 야훼는 절대선이며, 인간의 기준을 야훼에게 들이대서는 안된다고 변명하고는 하지요..
 
또, 야훼의 악행이라 주장하는 것은 오해이며 악행이 아니라는 온갖 궤변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야훼의 장애우 차별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면,
 
"제사장의 경우에만 제한을 둔 것이다."
(야훼는 자신의 성소가 더렵혀지는 것을 경계하여 장애우에게 제한을 두었지요. 분명히 야훼는 장애우를 차별한 것입니다.)
 
"예수가 율법을 폐하고 장애인들을 고쳐줬는데 왜 폐한 율법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가..?"
(그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 하여도, 예수 이전에는 분명 장애우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너희가 기독교만큼 장애우 봉사활동에 기여하는가?"
(그들이 장애우 봉사활동에 기여하건 하지 않건, 야훼가 장애우들을 차별한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등의 반박을 듣게 되곤 하지요.. 오늘 들은 답변 중에는
 
"야훼는 거룩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라는 장애우가 야훼의 거룩함을 훼손한다는 소름끼치는 편견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장애우 차별 구절에 대한 그들의 반사적 반박은 사실은 그들의 일반적인 주장과 심각하게 모순이 되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관념(장애우를 차별하는 것은 옳지않다)을 가지고 야훼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들의 변명이 자신들의 목을 조르고 있음을 그들은 느끼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바이블에 장애우 차별의 구절이 쓰여지던 시대의 도덕적 관념은 장애우에 대한 차별을 금하지 않았었겠지요..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장애우를 차별하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범죄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현대의 도덕적 잣대를 야훼에게 들이대며 온갖 궤변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그렇게도 신성시 한다는 바이블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야훼를 절대선으로 여긴다면, "야훼는 장애우를 차별하였으며 그것이 절대선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절대선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스스로도 그 포장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인간들의 도덕적 관념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음을 야훼가 알게 된다면 꽤나 씁쓸해하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인간들의 도덕적 관념의 변화라는 환경변화에 적응하여 진화해야하는 신 야훼..
 
그들은 이런 신을 절대선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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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무오란 바로 성경 원본에 대한 무오를 의미한다"

바이블의 원본이라는 것 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오하다..? 개그를 하세요~ 키득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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