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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팔다 - 크리스토퍼 히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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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팔다 - 크리스토퍼 히친스

 

“그녀의 성공은 겸손과 소박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미신적인 유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교활한 자와 한 가지 목적에 전념하는 자들이 소박하고 겸손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에 기댄, 천년왕국 이야기의 또 다른 장이다.”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에서 내린 평가다.

‘그녀’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1979년)요, 20세기의 성녀로 추앙받은 테레사(1910~1997) 수녀. 〈자비를 팔다〉는

자기희생의 화신인 ‘그녀’가 실은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 근본주의 종교사업가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니냐고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히친스의 전복적 사고는 다음과 같은 글에도 집약돼 있다. “니카라과 정부에 대한 전쟁에서 고의적으로 살해된 사람의 수는 콜카타의 모든 선교자들이 우연으로라도 목숨을 구한 사람 수보다 훨씬 많다.

”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우익 콘트라 반정부군의 공격 배후에는 돈과 무기를 대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로마 교황청과 현지 추기경은

그들을 지원했고 산디니스타에 훈계를 늘어놓았던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수사회’는 교황 직속 조직이었다.

1994년 의학전문지 〈랜싯〉의 편집장 로빈 폭스 박사는 테레사 수녀가 45년간 봉사한 인도 콜카타의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을 방문했다.

선행과 영웅적 덕행의 표본 마더 테레사를 ‘콜카타의 성녀’로 우러르게 만든 그곳에서 폭스는 삭발한 채 한 방에 오륙십 명씩 수용돼 죽어가고 있는 말기 환자들을 목격했다.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를 받지 못한 채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에겐 어쩌다 운 좋으면 항염증제인 브루펜 같은 약이 주어졌다.

“(링거와 같은)점적장비들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주삿바늘을 쓰고 또 쓰고 너무도 여러 차례 사용했고, 종종 바늘을 수도꼭지 밑에서 찬물로 헹구는 수녀들이 눈에 띄고는 했을 정도였어요.

그중 한 사람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깨끗이 해야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그래요. 한데 왜 소독을 안 하는 거죠? 물을 끓여서 바늘을 소독해야잖아요?’ 그러니까 그 여자 말이 이래요. ‘그럴 필요가 있나요. 시간도 없고요.’”

돈과 일손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다. “마구잡이식 날림시설”을 그런 식으로 운영한 것은 “심사숙고의 결과”다. 목적은 “고통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죽음과 고통, 그리고 굴종에 기반한 일종의 신흥종파를 선전하는 것”이었다.

105개 이상의 나라에서 5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운영했다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회 소속 수녀는 4천여명에 이르고 평신도 일꾼도 4만명이 넘었다.

기부금은 전세계에서 홍수처럼 밀어닥쳐 뉴욕 브롱크스 선교회의 한 당좌계좌에만 무려 5천만달러가 들어 있었다.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 쓰는 일을 좀처럼 허용받지 못했고,
 
대신 “가난을 호소할 것, 그리하여 손이 크고 어수룩한 사람과 기업들이 더 많은 재화와 봉사와 현금을 내도록 조종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히친스는 지적한다.

“의지할 데 없는 아기들, 버려진 낙오자들, 나환자와 말기 환자들은 동정의 과시를 위한 원자재들”이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 자신은 심장질환 및 노환과 싸울 때 서구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들에서 치료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테레사 수녀가 타계하기 2년 전인 1995년에 발간된 〈자비를 팔다〉는, 2001년 마더 테레사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교황청의 직접적인 요청에 따라

히친스가 반대쪽 증거와 주장들을 제출할 때 모본으로 삼은 책이다. 그런데도 교황청은 2003년 테레사 수녀를 준성인인 ‘복자’ 반열에 올렸다.

히친스가 테레사 수녀의 시성(諡聖)에 반대하는 증거로 제시한 사례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81년 아이티에 간 테레사 수녀는 나중에 결국 돈가방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친 폭군 장 클로드 뒤발리에를 두고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경우는 처음 보았다”고 칭송했다.

또 “현대세계의 가장 냉소적이고 천박하며 못된 여성 중 하나”요 “위선자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라고 히친스가 쏘아붙인 그의 부인 미셸의 두 손을 정답게 감싸쥐고는 “영부인은 느끼시고, 아시며, 자신의 사랑을 말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적인 행동으로도 보여주고자 하시는 분”이라 예찬했다.

사진에 담긴 그 장면을 독재자 뒤발리에는 잘도 이용해먹었다. 이런 게 마더 테레사의 ‘본질’이라고 히친스는 말한다.

사이비 종파 지도자 존 로저한테서 1만달러를 기부받고 함께 사진을 찍어 그의 사기모금 행각을 도왔다.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사건 가운데 하나인 저축대부조합 스캔들로 10년형을 살고 있는 가톨릭 근본주의자 찰스 키팅한테서 125만달러를 기부받고는 자신의 권위를 써먹도록 허락했다.

1992년 테레사 수녀는 키팅한테 관용을 베풀어 달라며 법원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때 답장을 보낸 로스앤젤레스 지방검사보 폴 털리는 2억5천만달러를

낭비와 사치를 위해 가로챈 키팅의 범죄행각을 설명한 뒤 기부받은 125만달러를 원래 소유자들에게 돌려주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그러나 답장은 없었다. 그 돈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답지한 거액의 다른 성금들의 행방도 묘연했다.

테레사 수녀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그리고 스페인 우익 프랑코주의자들과 만나 낙태 및 산아제한 반대 캠페인에 힘을 실어주었다. 1985년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주는 자유훈장을 받았는데, 그때 수상식장 지하실에선 올리버 노스 대령이 이란-콘트라 사건을 꾸미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고 1984년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수천명이 즉사한 유독가스 참사가 일어났을 때 분노한 유족들에게 말했다.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히친스는 결국 세계의 구조적 모순에 눈감고 지배자들 위주의 질서를 긍정하며 현상유지를 꾀하는 종교세력을 문제 삼고 있으며, ‘자비를 파는’ 마더 테레사야말로 그 첨병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히친스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2005년 실시한 ‘100대 공적 지식인’ 순위투표에서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5위에 올랐다는데,

무얼 기준으로 삼았는지, 그게 순위투표로 가려질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1위가 노엄 촘스키고 2위가 움베르토 에코, 3위 리처드 도킨스, 4위 바츨라프 하벨이라는 걸로 봐서 히친스란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비를 팔다>도 그렇지만 2001년에 낸 <키신저 재판>이란 책도 상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히친스가 천착해온 지적 작업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히친스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베트남전쟁 전범으로, 칠레 아옌데 정권을 뒤집고 방글라데시와 동티모르, 키프로스 등의 정변에 개입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모략가로 규정하며 단죄하라고 촉구한다.

그의 이런 전복적인 사고가 종교를 대상으로 종횡으로 구사된 게, <자비를 팔다>와 동시에 번역, 출간된 <신은 위대하지 않다>다. “하느님께서 모든 나무와 풀을 초록색으로 만드셨어요.
우리 눈에 가장 편안한 색깔 말이에요.

만약에 식물들이 전부 자주색이나 오렌지색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세속적 인본주의자, 그리고 무신론자에 불가지론자요

반종교주의자인 히친스에게 어릴 적 학교 선생의 이런 얘기는 터무니없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그렇게 만들어 놨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그런 자연에 적응한 결과다.

녹색식물에 적응하지 못했다면 인간은 애초에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인체 구조가 이렇게 기막히게 치밀하고 적절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게 신의 뜻이라는 얘기도 완전히 거꾸로 서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고 창조된 게 아니라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며 장구한 세월 동안 진화해온 결과가 그것이다.

뉴턴이 태양계의 불안정성을 발견하고 행성의 궤도가 다시 안정을 되찾게 하기 위해 하느님이 가끔 개입할 것이라고 하자,

라이프니츠는 그럴 바에야 왜 하느님이 처음부터 궤도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요컨대 히친스에게 신은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는, 세속의 욕망과 공포를 반영한 인간의 발명품이고 그런 신을 앞세운 종교는 오히려 인간의 행복을 해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의문이 배제된 철학, “화석화한 철학”일 뿐이며,
 신 없는 삶이 가능할 뿐 아니라 없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얘기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몽주의 운동이다.
인류의 견본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 운동 말이다.”

‘종교는 생명을 죽인다’ ‘지적 설계론’ ‘종교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가?’ ‘종교의 형이상학적 주장은 거짓’ 등 모두 19가지 흥미로운 항목을 설정하고 아주 친근한 사례들을 무수히 동원해 종교에 관한 ‘상식’들을 현란한 화법으로 하나하나 논파해나간다.






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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